실락원 - 김미옥
요즘 아픈 엄마를 실락원에 버리고 오는 꿈을 자주 꾼다
이름표를 감쪽같이 떼고 버린 죄책감을
드라이기로 싹싹 말리고 있는데
물고기처럼 눈알만 부풀어 오른 엄마가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다
이미 버려질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깜짝 놀라 깨어 베개에 숨 고르기 한다
나는 엄마 코에 손을 대본다
'여우야 여우야 죽었니 살았니'
고리짝 같은 얼굴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는 아이를 또 낳으려는지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북장구만 하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손톱에 물을 들일 땐 여자였고
옹알이 섞인 잠꼬대를 할 땐 아이 같다
먼 훗날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자장가를 부를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실락원에 버려줄 것인가
지난밤 끔찍했던 꿈을 숨기고
호로록 날아갈 거 같은 엄마 손에 지폐 몇 장 쥐어주는 아침
손사래 치는 모습에 마음은 가벼워지지만
자꾸만 내 자궁에서 나온 아이 같아서
젖몸살이 심해지는 것이다
*시집, 북쪽 강에서의 이별, 천년의시작
이명 - 김미옥
갱도를 차고 올라오는 레일의 파열음이었다가
검지를 박고 지나가는 재봉틀의 노루발이었다가
내리는 비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앵무새처럼 울면
회신 불명으로 부쳐버릴 거야
네 소리를 샤베트로 얼려 먹든지
밀랍인형으로 촛대에 꽂아놓든지 알게 뭐람
붉은 눈들이 맛있게 먹겠지
견고한 턱들이 즐겁게 씹어대겠지
이젠 정중히 사양합니다
비오는 날에만 울어주세요
무던히 기어가던 달팽이가 잠시 쉴 수 있게
바람의 뱡향이 북북서로 잠시 한눈팔 때
그때 울어주세요
반짝이는 은전처럼 되돌아오는 소리들
말이나 글로는 도무지 약속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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