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함박꽃 한때 - 권영옥

마루안 2018. 6. 11. 22:09

 

 

함박꽃 한때 - 권영옥


아카시아 꽃이 젖내처럼 향기롭다.

무엇이 되고자
한때는 들에 핀 함박꽃이었다.

막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 피고 싶었던 떄가 있었으니
그 막이란 말이 먼 산을 보고프던
기억의 향내란 것을
아카시아 꽃 뒤태를 본 후 알았다.

그것은 때 묻은 화관 위 그림 같은 것
반백에 찾아온 친구들의 수다를 보면서
한때가
섶머리 치며 오는 것도 아니고
민둥산에 흰 배를 드러내며
근육질 자랑하는 것도 아닌데
작은 것들마다 뿜어 올리는
제련의 기억들

찬연한!
생의 중반에서 돌아보는 충전제이다.


*시집, 청빛 환상, 북인



 

 

 

회춘의 명약 - 권영옥

 

 

머리에 가려진 채 핏기 잃은 얼굴 하나

누워서 눈을 감거나

추억을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하는 일은

김 할머니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3층 효 건물 담장을 맞댄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함성 놀이를 하고 있다.

공은 유리벽을 탕! 맞고

튀어오른 키만큼 탄성을 자아내며 떨어진다.

한 생이 노을 아래 납작납작 접이식으로 눕는다.

빈 운동장을 누운 채 바라보는 그녀 입에서

딸 이름을 웅얼거린다.

 

두 밤 지나면 딸이 온다는 간호사 말에

그녀 얼굴에 도화가 만발한다.

엉덩이에서 정든 반창고를 떼어내던 간호사가

"할머니 엉덩이가 회춘하고 있어요."

 

병실 벽에 기대거나 복도에 기댄 눈동자들이

일제히 붉은 살을 향해 돌진한다.

 

 

 

 

*自序

 

십 년 만에 품었던 알을 쏟아냈습니다.

환상에 기댄 푸른 시.

 

이 또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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