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실락원 - 김미옥

마루안 2018. 6. 11. 21:57

 

 

실락원 - 김미옥

 

 

요즘 아픈 엄마를 실락원에 버리고 오는 꿈을 자주 꾼다

이름표를 감쪽같이 떼고 버린 죄책감을

드라이기로 싹싹 말리고 있는데

물고기처럼 눈알만 부풀어 오른 엄마가

오도카니 바라보고 있다

이미 버려질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깜짝 놀라 깨어 베개에 숨 고르기 한다

나는 엄마 코에 손을 대본다

'여우야 여우야 죽었니 살았니'

고리짝 같은 얼굴에 대고 속삭인다

엄마는 아이를 또 낳으려는지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북장구만 하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손톱에 물을 들일 땐 여자였고

옹알이 섞인 잠꼬대를 할 땐 아이 같다

먼 훗날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자장가를 부를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실락원에 버려줄 것인가

지난밤 끔찍했던 꿈을 숨기고

호로록 날아갈 거 같은 엄마 손에 지폐 몇 장 쥐어주는 아침

손사래 치는 모습에 마음은 가벼워지지만

자꾸만 내 자궁에서 나온 아이 같아서

젖몸살이 심해지는 것이다

 

 

*시집, 북쪽 강에서의 이별, 천년의시작

 

 

 

 

 

 

이명 - 김미옥

 

 

갱도를 차고 올라오는 레일의 파열음이었다가

검지를 박고 지나가는 재봉틀의 노루발이었다가

내리는 비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앵무새처럼 울면

회신 불명으로 부쳐버릴 거야

네 소리를 샤베트로 얼려 먹든지

밀랍인형으로 촛대에 꽂아놓든지 알게 뭐람

붉은 눈들이 맛있게 먹겠지

견고한 턱들이 즐겁게 씹어대겠지

 

이젠 정중히 사양합니다

비오는 날에만 울어주세요

무던히 기어가던 달팽이가 잠시 쉴 수 있게

바람의 뱡향이 북북서로 잠시 한눈팔 때

그때 울어주세요

반짝이는 은전처럼 되돌아오는 소리들

말이나 글로는 도무지 약속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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