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喪家는 아늑하다 - 김응교

마루안 2018. 6. 8. 20:37

 

 

喪家는 아늑하다 - 김응교

 

 

딱 한 번 전화로 통화했던

후덕한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한다

방 가득 둘러앉아

무거운 무게를 견디는 꺾인 표정들

비스듬히 노을빛 받아 귤빛으로 물든다

한 사람의 임신한 유부녀와 대여섯 총각들이 둘러앉아

상가인지도 잊은 채

탄생에 관해 얘기한다

한꺼번에 쌍둥이 낳으면 좋잖아?

지금 욕하는 거예요?

푸푸 웃으며 죽음과 친해진다

 

자정이 넘어 장기전에 돌입할 전사들만 남는다

웅크린 짐승마냥 귀가하는 먼 걸음들

샐녘까지 몇몇 문상객만 다녀가겠지

몇 패로 갈라 밤을 때우고

셀프서비스로 냉장고 속속 끄집어내며

똥배만 키우는 거북스런 보름달

매슥한 기억을 게우거나

신문지 뒤집어쓰고 뒤척이는

 

노곤하게 물러가는 어둠

기우뚱 졸고 있는 喪主의 등허리에

고인이 남긴 후일담이 어슴푸레 번져 오고

아기 햇살 작은 입 벌리는 짧은 순간, 나도

내 후일담을 꾸며

둥그런 자궁을 부유하는

죽은 시늉으로 뼈를 눕힌다

 

 

*시집. <씨앗/통조림>, 지식을만드는지식

 

 

 

 

 

 

통조림 - 김응교

 

 

지하철에 푸줏간 고깃덩이들 매달려 배달된다

운송 조건에 따라 옆구리가 녹슬거나

이마빡이 주그러지거나

터져 버릴 때도 있는

침묵의 밀봉(密封)

 

형광등 조명 아래

칸칸이 사무실에 깨끗이 진열된

넥타이 통조림들

 

절여진 몸으로 반송되어 아파트에서

철거 건물처럼 허물어진다

옆구리 바코드의 제조연월일,

현대 의료진은 60년을 보장한다

 

가는 날

운명께서 힘주어 윗뚜껑 따실 때

세상은 판별하시겠지

상투적인 표정으로 하품하는

불안한 목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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