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때 이후 - 김이하

마루안 2018. 6. 8. 19:49

 

 

그때 이후 - 김이하

 

 

그대의 눈을 보듯 목련을 바라본다 저 솜털 부숭부숭 한 꽃의 부리를 들여다보며 한참도 지난 겨울의 한 자리 찾는다 봄은 지척인데 무슨 소리냐고,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았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기에 내 인생의 한 점은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리며 꺼져갔다 그리곤 어느 자리에서 주저 앉아 먼 하늘 바라보면, 문득 깜빡 잊었던 단지 속의 엿가락처럼 달콤하게 떠오르는 기억,

 

우리는 가끔 이런 걸로 살지 않는가? 정말 잘 나가던 시절도 정말 뜨겁던 시절도 정말 죽고싶던 시절도 다 잊혀가고, 아련한 한 가닥 아지랑이 같은 그 눈빛 찾아 시력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대의 눈을 보듯 목련을 바라본다 언젠가 화들짝 피어 있을 첫눈 같은 그대, 목련을 바라보면 언제나 그대의 눈에 가득 들어오던 첫눈 내리는 밖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직은 깜깜하다, 환한 목련을 기다리는 풍경은

 

나는 봄에도 이렇게 사는 것이다

 

 

*시집, <춘정, 火>, 바보새

 

 

 

 

 

 

춘정(春情) - 김이하

 

 

매화 피었다기

일러서 못 가보고

 

뒤늦게 부랴부랴

쌍계사 십리 길을 주저 없이

손을 잡고, 몸을 대끼며

십리도 넘게 걷다가

 

이윽고 날 기울자

환한 벚꽃들 홀연, 홀연

입술을 덮치고

마음은 천만리 흩어지다가

 

그뿐이다

 

 

 

 

# 김이하 시인은 1959년 전북 진안 출생으로 1989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타박타박>, <춘정, 火>, <눈물에 금이 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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