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반짝임에 대하여 - 김선우

마루안 2018. 6. 8. 20:19

 

 

반짝임에 대하여 - 김선우


순천만 겨울 갈대숲 바람 속에 웅성거린다
가녀린 몸집의 도요새떼
갈대숲 가장자리 차가운 진펄에 내려서서
바람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뼝대처럼 펼쳐진 북풍의 정면,
사소한 신음 한줄기 새어나오지 않는
민물도요 고요한 얼굴들
조그만 한뼘 키에 삼생(三生)을 눌러앉힌
면벽 나한들 같다

바람의 마음을 읽기 위해 오래 기다려온
입선(立禪)의 새떼 마침내 날아오른다
모든 각도에서 낱낱이 다르게 반짝이는
정면을 기억하는 측면의 날갯짓들,
순천만 한 허공이 갈꽃 무리처럼 반짝인다

저마다 다른 음역으로 바람을 허밍하는
갈대의 꿈을 부리에 물고
모두 다 다르게 읽은 바람의 마음속으로
비상!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눈 그치고 잠깐 햇살 - 김선우


지저분한 강아지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던
동해 바닷가 막횟집 평상 아래
눈 그치고 잠깐 햇살,
일어나 몸을 턴 강아지가 저편으로 걸어간 후

동그랗게 남은 자국,
그 자리에 손을 대본다
따뜻하다
다정한 눌변처럼

눈 그치고 살짝 든 평상 아래 한뼘 양지
눌변은 눌변으로서 완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주 조그많더라도

조그만 나뭇잎 한 장 속에
일생의 나무 한그루와 비바람이 다 들어 있듯이

 

 

 

# 김선우 시인은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1996년 <창작과비평> 가을호 작품 발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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