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래기 - 육근상

마루안 2018. 6. 8. 21:02

 

 

시래기 - 육근상

 

 

바람벽에

시래기 타래 길게 늘어져 있다

물 기운 빠져

걷기 힘겨운 엄니 왼다리 같다

 

되똥거리며

해종일 다랑이 밭 일구고 콩잎 따고

수수목 꺾던 손등도

이제 장작 같구나

 

그 손에 자란 나도 장작 같아서

젖은 손등 문질러 온기 집어넣는데

얼마나 길게 연기 빼어 무는지

매운 눈물이 시래기 타래로 떨어져

바특하게 끓여놓은 찌개 같다

 

시래기 같은 몸으로

바람벽 기대어 엄니 보고 있자니

까치밥 파먹고 달아나는 새 떼처럼

나는 지금껏 엄니 파먹고 살아온 것 아니냐

물 기운 빠져나간 왼다리가 인두 자국처럼 붉다

 

 

*시집, 절창, 솔출판사

 

 

 

 

 

 

낙화 - 육근상


한마디도 없이 길다

다시 돌아가려니 가슴 먹먹해진다

초입에 쪼그리고 앉아 경배 중이신 엄니

다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일흔넷 되셨다

돌아가야지 어둡기 전 돌아가야지

열무 단 묶으며

더께 진 손등 분가루 날리더니

좌판에 던진 햇살 털어내더니

마당에 덩어리째 떨어져 날린다

한철 모가지만 남은 가랑잎 소리 내며

 

 

 

 

# 시인 육근상은 1960년 대전 출생으로 1991년 <삶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삶의 주변에 떠도는 상처와 결핍, 그리고 희망을 쓰다듬는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