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내지 못한 편지 - 김광수

마루안 2018. 6. 7. 21:33

 

 

보내지 못한 편지 - 김광수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배신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너를 사랑하는
천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네가 미워서
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미워하지 않으면
내가 아프기 때문에
너를 미워하는 것이다
나의 사랑은 생존에 순행하는 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저열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를 더 사랑하거나
내가 더 아픈 것이
차라리 사랑이려니 했다가
그러다가 나중에
너를 더 미워하게 될까 봐

그러면 네가 더 아플까 봐

 

*시집,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 문학과경계사

 

 

 

 

 

 

후회 - 김광수

 

 

내 몸이 아직 살아 있어
이마트에서 구두 한 켤레 사 신고
원추리 새싹 돋는 공원길 걷네
백목련 피어있고
진달래 피려하는
이 걷잡을 수 없는 봄에,
나는 발에 잘 맞는 구두 한 켤레 사 신고
저 혼자 출렁거리는 그림자를 밟네
옛 느티나무는 없는데
옛 느티나무 그림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출렁출렁거리네
이 걷잡을 수 없는 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발에 잘 맞는 구두 한 켤레 사 신고
저 혼자 출렁거리는 그림자 밟고 서서
한숨짓는 것뿐이라네

 

 

 

 

# 김광수 시인은 1964년 전남 구례 출생으로 전남대 사법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방불교대 승가학과를 졸업했다. 중국 상해 복단대에서 중국어와 한문을 공부했다. 2002년 계간 <문학과경계> 시부문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비슷비슷하게 길을 잃다>가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때 이후 - 김이하  (0) 2018.06.08
삼원색 - 박시하  (0) 2018.06.07
거꾸로 매달린 사람 - 박주하  (0) 2018.06.07
그리운 뒤란 - 권덕하  (0) 2018.06.07
너의 향기를 어찌 견디겠니 - 고재종  (0) 2018.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