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 공광규

마루안 2018. 5. 24. 20:59



고독사에 대한 보고서 - 공광규



시골 재당숙이 혼자 살다 돌아가셨다
집안 역사교과서 한 권이
동네 이야기책과 지적도 한 책이
신명꾼 하나가 사라졌다
혈관부에 피가 돌던 굽은 나무 한 그루가
평생 동네를 떠나 본 적 없는 말뚝 하나가 뽑혔다
매일 아침 열리던 대문이 며칠째 닫혀 있자
독거노인 둘이 방문을 열었다고 한다
산비탈에 황토 구덩이를 파놓고
대전으로 부검 받으러 떠난 시체를 기다리는 노인들
혼자 살다 죽으면
칼로 배가 갈려 한 번 더 죽어야 한다며
노을이 번질 때까지 투정하는 인부들
땅을 향해 몸이 자꾸 꼬부라지는 노인들이
겨우겨우 무덤 가까이에 친 천막에 올라와
고인이 나이롱 뽕을 좋아하고
'갈대의 순정'이 십팔번이었다고 회고했다
동네에 들어와 사는 타지 출신 중늙은이 몇과
시골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관을 들고
비탈에 올라 청태산 낙타봉을 좌향 삼아 심었다
동네회관에 내려와 저녁 먹고 술을 나누는데
재당숙이 보이지 않던 며칠간
자식들 대신 까마귀가 집 주위를 돌며
말게 울다 떠났다고 했다



*시집, 파주에게, 실천문학사








그러거나 말거나 - 공광규



청양농협 장례식장 가까이 여관 간판이 보인다
삶이라는 것이
잠시 여관에 드는 것이라는 말이겠다
냉동된 시체를 꺼내 선산에 묻으러 가는데
개망초꽃이 재당숙모 머리카락처럼 하얗다
상주는 어이 어이 상례를 갖추어 울고
밤나무 숲에서 꾀꼬리가 영롱한 노래로 화답한다
댓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 옷을 적신다
관을 들고 가는 일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포클레인은 감정 없이 구덩이를 푹푹 파고
황토가 핏물처럼 산비탈을 흘러내린다
구덩이 주위에 둘러서서
관이 내려갈 깊이를 가늠하고 있는 사람들
산 너머 사는 늙고 잘 생긴 스님의 염불이 슬프다
그러거나 말거나
꾀꼬리와 참새와 비둘기들이 노래로 화답한다
풀과 나무는 푸르고 들꽃은 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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