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퀴 소문 - 천수호

마루안 2018. 4. 17. 19:21

 


바퀴 소문 - 천수호


이러한 봄날이었다
내가 그를 찾아 나선 것은

왼쪽 귓바퀴를 따라가면 목련마을이 있고
오른쪽 귓바퀴를 돌아가면 막다른 산길이다
그가 일으키고 간 모래먼지가 다시 길이 되어 조용해졌을 때
그의 바큇자국 위애 내 바퀴는 헛돌았고
그가 데리고 간 불가피는 땅의 생기를 휘몰아 꺾었다

햇빛이 봄의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들판
덩그러니 놓인 그의 자동차 문이 잠겨 있다

탱자나무 가시는 박제된 표범의 이빨이다
아무리 으르렁거려도 그는 보이지 않는다
개 짖는 소리만 따라온다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보름달 볼퉁이 빠져나간
그의 음성이 내 귓바퀴를 끌고 다닌다


*시집, 우울은 허밍, 문학동네


 




세대 차이 - 천수호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저 보폭은 도대체 누구의 거리입니까
너의 걸음으로 여덟이지만 내 걸음으로는 턱없이 멉니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는 일 년입니다. 오백 그램입니다
문양이 찍히다가 만 절편입니다
결백이 건너가는 쉼표입니다. 어둠의 깊이가 잠겨 있는,
더이상 웃지 못할 사건입니다
둘 혹은 넷이 함께 가는 거리입니다
노란 네온 간판이 반도 못 걸어가는 기척입니다
차와 차 사이가 멀어지는 거리입니다
내일이면 내가 혼자 끌고 갈 연약한 무게입니다
한 사내가 검은 봉지 속을 두 번 들여다보는 거리입니다
관절 없이 걷는 문명입니다
배낭을 앞으로 메고 걷는 아이의 미래입니다
한꺼번에 거두고 가는 어둠의 가장 짧은 호흡입니다




# 천수호 시인은 1964년 경북 경산 출생으로 명지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이 있다. 여성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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