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비에 봄을 보낸다 - 서영택

마루안 2018. 4. 16. 22:16

 

 

봄비에 봄을 보낸다 - 서영택


빗물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면서 물웅덩이를 만든다 톡톡 바닥을 적시는
빗방울들이 생각에 잠기고 몇 개의 파문을 만드는 동안 웅덩이는 생겨났다

물웅덩이가 허공의 골짜기, 구름과 구름의 통간에서 시작되었다,는
낭설은 낭설이 아니다

허공의 어둔 저녁,
구름이 구름을 만났을 때에 봄의 숲이 그늘을 끌고 젖어 들었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빗방울을 끌고 와서 유리창을 닦았다

흰 벚꽃 내려오다 빗길에 미끄러져 차창에 부딪친다 빗방울에 찰싹, 달라
붙어 유리창에 벚꽃 피었다

구름의 눈물 그렁그렁 고여 있는
흰 벚꽃 무덤

웅덩이는 한바탕 울고 가는 봄비의 울음 터, 꽃잎이 떨어지고 잎사귀가 매달리고
울음이 자란다

봄비에 봄을 보낸다


*시집, 현동 381번지, 한국문연


 




목련의 말 - 서영택


봄 입구에
목련나무를 보았나
뜰 앞의 목련나무가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앉은
제 꽃잎을 보려고 손을 뻗었다
화무십일홍,
붉게 피었던 꽃의 격정이 찬란하였다
어둠이 물드는 저녁의 골목을 따라
누군가 발을 받아주거나
봄날 찾은 꽃의 관한 애기를 귓전으로 흘리며
조로에 걸린 목련꽃을 생각한다
붉은 향기로 이름을 남기는
목련은 꽃들의 정원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었다
멀어지는 목련꽃의 뒷모습
꽃잎들을 쓸어 담는
늙은 청소부 빗자루에서
목련꽃의 생애가 봉분으로 남는다
꽃의 향기는 덤, 남은 봄날의 몫이다
봄날이 갚아야 할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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