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너무 늦거나 이른 - 장시우

마루안 2018. 4. 4. 21:38



너무 늦거나 이른 - 장시우



무엇을 해도 너무 늦거나 이른 오후 세 시
영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만지작거리는데
꽃망울 터트린 목련에 자꾸 눈이 가네
내가 피울 꽃들은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조바심만 떨다 꽃도 없이
어이없게 가버린 건 아닐까
바닥에서 누워버린 잎들을 일으켜 세우니
마음을 버린 색은 하늘빛으로 저를 물들이고
가벼이 날아오르네
무엇을 해도 너무 늦거나 이른 오후 세 시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길나서기에 결코 늦지도 이르지도 않다는
혼잣말 다짐 삼아
그리 늦지 않았다며
아직 남은 햇살에 목련꽃 한 잔 우려 마시고
모른 척 물들어도 좋으리
좀 이른 불을 켜도 좋으리



*장시우 시집, 벙어리 여가수, 문학의전당








꽃의 이별법 - 장시우



사나흘 세상을 설레게 했던
벚꽃의 투신은 화려했다
저를 각인시키는
저 꽃의 이별법이라니


두근거리던 꽃의 시간이 가고
대책 없이 지는 봄
바닥에는 수북한 봄의 잔해들,
그리고 나는 아직 지상에 남았구나
저 뜨거운 주검 앞에
아무렇게나 살아온 내가,
그렇게 한 생을 허비한 일이
부끄러웠다


꽃무덤으로 남은 봄날은 가고 없으리
꽃은 그렇게 가고 없으니
허공만 남기고 가는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