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신발을 잃어버린 날 - 임후남

마루안 2018. 4. 3. 22:05



신발을 잃어버린 날 - 임후남



비가 온다
어제부터 왔던 비가 지금도
온다 오래 전 늙은 아버지가
비를 맞는다 나이든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고운 쌀밥을 지어 먹었다
내겐 이미 젖어버린 아버지
한 시절 햇빛 아래 빛나던 아들이었을
그 남자에게처럼 내게도 비가 온다


발바닥 굳은 살 도려낸 자리에서
또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젖은 아버지,


신발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맨발로 저만치 달려가 있는
나,
혹은 먼지로 남은 아버지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 북인








어른 - 임후남



어느 날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어쩌다 보니 아이들이 줄줄이 크고 있을 때,
고향 떠나 서울 변두리에 간신히 방 한 칸 세 들었을 때
서울사람보다 더 낯선 시장통에 나앉았을 때,
한솥밥을 나눠먹은 아이들이
공장과 학교와 골목으로
저마다 각자의 세상으로 내몰려졌을 때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루의 먹거리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육체가 병들어갈 때


술에 취하지 않은 그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기도 몰래 어른이 되었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