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고 고맙다 나머지 내 몸뚱이여 - 신현수

마루안 2018. 3. 22. 19:52

 

 

그리고 고맙다 나머지 내 몸뚱이여 - 신현수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만은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 대장만은 깨끗할 거라는

참으로 헛된 희망은 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인지

 

내 몸뚱이에 대해

내가 지난 오십여 년 이상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내가 품었던 말도 안 되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 망상에 불과한데

 

내가 평생 내 위에 쏟아 부었던 술

내가 평생 내 폐에 불어넣었던 담배연기

내 대장을 통과했던 기름진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개고기, 오리고기, 양고기, 말고기,

심지어 토끼고기까지

내가 지난 오십여 년 이상 몸뚱이 속으로 밀어 넣었던

온갖 고기들을 생각하면

내 대장만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거의 미친 생각인데

 

대장의 용종이여 미안하다

높은 감마지티피 간 수치여 미안하다

높은 혈압이여 미안하다

위의 염증이여 미안하다

외치핵이여 미안하다

허파의 상처여 미안하다

약간의 난청 증세를 보이는 귀여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나머지 내 몸뚱이여

 

 

*시집, 인천에 살기 위하여, 다인아트

 

 

 

 

 

 

사랑은 얼마나 견디는가 - 신현수


새벽 비 내리는 오거리의
이별을 견디는
뺨을 스치는
바뀌는 계절의 바람을 견디는
한꺼번에 후드득
가슴 위로 떨어지는
은행잎을 견디는
끝내 꿈일 수밖에 없는
꿈을 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는
숨도 쉴 수 없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한숨을
틀어막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아무리 멀어도 가는
희망 하나 없어도 가는
견뎌야할 이유가
만 가지도 넘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