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진 꿈 - 임성용

마루안 2018. 3. 22. 20:14



모진 꿈-  임성용



꿈 하나 있어
얼음송곳 끝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 있어


나는 보았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그 투명한 떨림을


모진 꿈이 더 모진 꿈을 부르고 있어
모진 슬픔이 더 모진 슬픔을 데려오고 있어


나는 보았네
그대가 스스로 매듭을 묶은
달무리 진 올가미가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았네
그대가 마지막까지 바라본 하늘을
그대가 마지막까지 바라본 세상을
아니, 나는 보지 못했네
마지막까지 나를 바라본 그대의 눈빛을
그대의 모진 꿈이 사라지는 동안
나는 차마 모진 꿈조차 꾸지 못했네



*시집, 풀타임, 실천문학사








트럭 - 임성용



나는 5톤 트럭을 몰고 네 시간 반을 달려왔다
2톤 이상은 과적이다
과적보다 무거운 것은
갑자기 눈발처럼 쏟아지는 잠의 중량


달랑 내 몸 하나 들어가 누울 운전석 뒷자리에
밧줄에서 풀린 잠을 잠시 누인다
베개를 깔고 동잠바를 덮어주고
잠의 살결이 스펀지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나는 그녀의 보드라운 젖을 만진다
그녀는 내가 지칠 만하면
지방질이 물컹 빠진 젖의 꼭지를
내 메마른 입술에 꼭 한 번씩 물려준다


밤 깊은 고속도로 휴게소,
배식대를 빠져나온 나를 닮은 사내들이
그녀의 젖에서 흘러나온 구수하고 따끈한 숭늉을 마신다
고장 난 후미등에 매달린 이빨들이
함부로 열리지 않도록
이쑤시개를 물고 단단하게 잠긴 입술들


아직 갈 길은 먼데
트럭 위에는 벌써 한 짐 가득 눈이 쌓였다





# 임성용 시인은 1965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1992년부터 노동자문예 <삶글>에 시와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구로공단, 안산공단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지금은 화물트럭을 몰고 있다. 시집으로 <하늘공장>, <풀타임>이 있다. 2002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