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 박석준

마루안 2018. 3. 16. 20:15

 

 

흔들거리는 목소리의 슬픔 - 박석준


'살아온 만큼의 아름다움', 예전엔 목소리로 떨구었는데, 요즈음엔 뇌리에 새겨지는 말이다.

생각은 너무도 쉽고 편하지만 말 한마디는 얼른 건네지 않는 20대! 하여 사람들은 늘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40대에 이르면서 돈,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을 얽어버린, 비의 몸짓이 되게 한다.

돈 없음과 돈 있음,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돈 없는 갈등과 번민은 사람을 구속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있지 못하게 한다, 실존하지 못하게 한다.

회색의 거리가 가끔 사람의 비틀거리는 길을 껴안는다. 실존의 순간들을 실존의 욕망으로 변하게 한 것은 비가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비는 없다. 그저 잘 흘러가려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사람을 잃기 전에 '나'를 잃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나'를 잃는다. 길을 잃어버린 그림자라고 말해야 옳다. 지금은.

사람은 원래 세 개의 색깔을 가지고 항상 서성거리지만, 40대 중반에 이르면 한 개의 색깔만이 시간을 따라 퇴색해, 사람의 자격을 잃게 한다.

사람, 빛깔을 잃으면서 물건보다 더 흔한 것이 되어 버린 사람, 사람과 사람의 나날이 저물고 있다. 석양 속으로 다만 캄캄한 밤이 되기 전, 가고 싶은,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만 뇌리를 꿈틀거린다.

흔들거리는 목소리! 말이 되지 못하는 목소리는 슬프다.


*시집,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 문학들


 

 



말과 속말 - 박석준


언어의 구속성
말은 사람을 구속한다.
말은 상대방을 구속하고, 말은 나를 구속하고
말로 인해 모든 것이
조심스럽게 나를 구속한다.
말로 인해 사람이 두려워지고
함께 있어 어색하고
어색한 곳에 내가 버려진 채로 풍경처럼만 있어,
연락 안 한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속말을 하여도

젊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
젊은 것, 낯선 것에 대해 사람은 호기심을 갖지만
젊지 않아서 어쩌다 한 번씩 부딪쳐본다.
낯익은 후엔 새로운 것을 기대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말을 하고
말은 다시 내가 말할 범위를 구속하고
말할 상황을 구속하고
나는 말이 끝난 후에 가는 길 위에서 생각해 본다.
'젊지 않은 나는 풍경만큼의 의미도 없는지 모른다.'
속말도 하거나 하면서

젊지 않아서 40대 후반의 어떤 이는 삶의 빛깔을 갖고자
색소폰을 부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
40 후반의 나는 취미가 삶에 구속당할 만큼 가난하여
취미 하나를 잃기로 하자 했다.
길가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집들이 뭉켜 있는 것처럼
나는 젊은 시절만 사람들에게 어울린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젊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
나는 지금 낡은 사람이 되어 있다,
말은 요구와 충당이어서.
말은 충전하지 못한 채로.
사람들이 내가 있는 풍경 가까이 오지 않는 걸 보면.
연락 안 한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시라
속말을 하는.

 



# 박석준 시인은 1958년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 국문과,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문학마당>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카페, 가난한 비>, <거짓 시, 쇼윈도 세상에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