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깨어 있다는 것 - 김윤환

마루안 2018. 1. 29. 22:41

 

 

깨어 있다는 것 - 김윤환


양계장에 밤새 켜 있는 백열등을 보고 주인에게 물었다 닭이 잠들면 알을 낳을 수 없다고 깨어 있어야만 알을 낳는다고 대답했다 깨어야 알을 낳는다는 것, 깨어 있어야 생명을 낳는다는 것, 참 가혹하면서 경이롭다 가혹한 새벽 무렵 한 알의 생명이 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이 세상에 왔을지 몰라

살아 있음이란,
무정란의 깊은 잠
그 경계선에서
불면의 가혹함을 견뎌내는 것,
기어이 결가부좌를 틀고
알을 품는 것이 아닌가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시와에세이

 

 

 

 

 

 

사즉생(死卽生) - 김윤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박정희가 죽고 박정희를 말하고 김대중이 죽고 김대중을 말한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말을 듣는다 사람은 죽어서야 제 점수를 받는다 예수의 사람 바울도 자아가 살아 있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그렇게 부르짖었다 내가 살아있는 만큼 나에 대한 모든 말들은 번민이 된다

 

내 안에 꿈틀거리는 이단(異端)

나를 살린다고 자꾸 딴 말을 시킨다

내가 죽어야 내 말을 할 텐데

내 속의 나는 죽지 않고

그저 살려 달라고 소리만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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