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밥이 내게 말한다 - 여림

마루안 2018. 1. 24. 19:55



밥이 내게 말한다 - 여림



당신들은 나를 빌어 욕을 하지만
그러나 나는 기꺼이 당신들의 밥이 된다
밥맛없는…밥값도 못하는…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밥벌레 같은…밥통 같은,
밥줄이 끊어진 당신들이 모여 앉아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 나는 밥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다가도 밥술을
구걸하러 온 시동생의 뺨을 밥주걱으로
사정없이 올려붙인 놀부 마누라처럼
당신들을 향해 밥상을 엎고 싶어진다
사람 사는 맛은 밥맛과도 같은 거야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이
밥상 앞에 오순도순 정답게 둘러앉아
군내가 풍겨나는 묵은 김장 김치를 꺼내
싱싱한 고등어를 토막쳐 놓고 끓인 찌개에다
따뜻한 한솥밥을 함께 나눠먹는 거지
밥 한 끼를 벌기 위해 오늘도 수없이 많은
밥맛 앞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내게 밥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



*유고전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최측의농간








정독 도서관 - 여림



한낮에 이곳을 찾아오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괜시리 맘이 언짢다.
허름한 잠바나 바랜 양복
바지를 걸친, 하나같이 지치고
왜소한 체격인 그들은 꼭 하나같이
작고 까만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등이 굽은 듯한 그러면서도 늘
고개를 땅으로 수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