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연어, 7번 국도 - 이용한

마루안 2018. 1. 23. 22:39



연어, 7번 국도 - 이용한



남대천으로 떠난 내 삶이 1박한 곳은
내게 가혹하게 들이닥친 11월의 바다 한가운데였다
나를 통과한 기억은 밤새
거친 물살을 헤치고 7번 국도를 거슬러 오른다
마치 수만 km를 헤엄쳐 모천 회귀하는 연어처럼,
애당초 떠난 순간부터 나는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벗어나고자 했던 음습한 마을의 골목과
버스와 지하철과 오! 여긴 너무 지긋지긋해, 라는 풍경과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로
도리 없이 나는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 나는 잠시 연어~, 하고 몸부림쳤다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추억을 윤회한 연어떼가 지나가고
지나간 사랑의 젖은 입술과 청춘의 월 3만원 짜리 자취방과
어린 날의 정류장에서 삶은 달걀을 손에 쥔 어머니,
그리고 이미 지나갔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또 한 번 지나간다
사는 동안, 자주 나는 길을 잃곤 하였다
심지어 매일 돌아오는 집 앞에서도,
하긴 어디에서건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내 삶은 한겨울 낙산에서 만난 손님 들지 않는 민박집처럼 외로웠다
태풍이라도 닥치면 50미터쯤 휙, 날아갈 것 같은 지붕을 견디면서
어느덧 나는 절반의 인생을 건너왔다
절반의 죽음에 다름 아닌,
누구나 때로는 원치 않았던 삶을 거슬러 오른다
원치 않았던 눈물과 풍랑과 길 떠남과
거듭 미안했어요, 라는 후회
이제 나는 그것을 납득하고자 고개를 끄덕인다
본래 풍경과 세월은 한 몸이며, 추억과 근심도 한 뿌리다
떠남과 돌아옴의 윤회 속을 떠도는 일도
필경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몸바꿈에 다름 아닐 터
오늘 밤 나를 따라온 미련들은
안개 속에 내내 휘청거리다 이제서야 잠이 든다
모천의 강바닥에 지친 지느러미를 내리고,
문득 나도 전생처럼 푸른 잠결 속을 가만 뒤척여본다.



*시집, 안녕, 후두둑 씨, 실천문학사








3번 국도 혹은 - 이용한



3번 국도에 난분분 눈 내리고,
나는 또 기약 없는 국도의 세월에 잠긴다
마음 뒤로 친친 늘어뜨린 길들이
덩달아 출렁거리는 장호원 혹은 다 젖은
세월아, 가는 거니? 그 동안 즐거웠어요
가남 지나 곤지암
지나면 이 휴일 저녁의 밀리는 생도 좀 나아질까
가슴이 덜컹거리던 한 시절의 연애도 끝이 날까
막힐 줄 알면서 온 인생아
영혼의 정육점 같은 붉은 신호등에 걸려
깜빡깜빡 좋은 시절 다 보냈지
세상의 남자들이란 중고 자동차 같은 것,
폐차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가엾게 빵빵거리지
그럴듯한 연애도, 절박한 인연도
지나고 나면 지독한 매연이었어
돌아갈까 그냥 갈까
이토록 마음 분분한 3번 국도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해 끼익,
밀려온 생을 이면도로에 세우고
지체 서행을 반복하는 초월면 혹은 캄캄한
사랑아, 이미 늦은 거니?
늦어서 미안한 길 위의 날들--,


어떻게 이번 생을 건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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