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때 늦은 사랑 - 김사인

마루안 2017. 1. 21. 23:47



때 늦은 사랑 - 김사인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시집, 가민히 좋아하는, 창비








예래 바다에 묻다 - 김사인



눈 감고 내 눈 속 희디흰 바다를 보네
설핏 붉어진 낯의 자랑이었나 그대 알몸은
그리워 이가 갈리더라 하면 믿어는 줄거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손톱만 물어뜯었다 하면 믿어는 줄거나
내 늙음 수줍어
아닌 듯 지나가며 곁눈으로만 그댈 보느니
어쩔거나
그대 철없어 내 입안엔 신 살구내음만 가득하고
몸은 파계한 젊은 중 같아 신열이 오르니
그립다고 그립다고 몸써리치랴
오 빌어먹을, 나는 먼 곳에 마음을 벗어두고 온 사내
그대 눈부신 무구함 앞에
상한 짐승처럼 속울음 삼켜 나 병만 깊어지느니



*예래는 제주의 중문 동쪽 바닷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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