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버들집 - 이영광

마루안 2017. 1. 15. 04:18



버들집 - 이영광



어쩌다 혈육이 모이면 혈압이 오르던 고향
원적지의 장터,
젓가락 장단 시들해진 버들집
아자씨 고향이 나한텐 타향이지라
술 따르는 여자들은 다 전원주 같거나 어머니 같다 황이다
나는 걷고 걸어 지구가 저물어서야 돌아왔는데,
이미 취한 여자의 정신없는 몸에 어깨나 대어준다 황이다
더운 살이 흑흑 새어들어와도
나는 안지 못하리라, 고향에서 연애하면 그건 다
근친상간이리라
파경이리라
옛날 어른이 돌아온 거 같네 얄궂어라
수양버들 두 그루가 파랗게 시드는 꿈결의 버들집
버들집은 니나놋집
나는야 삼대,
어느 길고 주린 봄날의 아버지처럼 그 아버지처럼
질기고 어리석은 고독으로서
시간이, 떠돌이 개처럼 주둥이를 대다 가도록 놔둔다 황이다
고향을 미워한 자는 길 위에 거꾸러지지 않고
돌아와 어느새 그들이 되어 있는데
수양버들 두 그루는 아득한 옛날에 베어지고 없고
그 자리, 탯줄 같은 순대를 삶고 있는 국밥집
삼거리엔 폐업한 삼거리슈퍼
보행기를 밀고 가는 석양의 늙은 여자는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불러도, 귀먹어
돌아볼 줄 모른다



*시집, 아픈 천국, 창비








저 나무 - 이영광



저 나뭇잎들 만원권 지폐거나
로또였으면, 하는 마음들이
석 달 열흘 지나갔는데
절대로 집구석엔 들어가지 않겠다,
허망과 오기로 떠들며 견디던
국밥집의 사내들도 취해 돌아갔는데
소주 이빠이 들어간 빈속처럼
뒤틀린 언덕길
그늘을 다 나눠준 누드
저 나무, 불 끄듯 언 손을 더듬어
마지막 한 잎을 떨군다
어둠이 한번 받았다가 내려주는
추운 땅
변두리에서의 오랜 공덕,
아무도 지갑에 넣어가지 않는
복권을 다 파셨다
한 점의 후회도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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