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필요한 아침 - 임곤택
잡지의 표지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 드러난 그런 배경이 좋겠다
창에 은박지를 붙여놓았다
새들어온 빛이 환등기같이 담배연기를 비춘다
좀 눌은 벽지 위가 좋겠다
한 아저씨가 다가와 바지를 쓱 내리는
변두리 극장쯤이 좋겠다
게슴츠레한 노래가 좋겠다
책보다는 거울이, 일자로 다듬은 콧수염이 좋겠다
담배를 또 문다
새벽까지 아이들에게 글 잘 쓰는 비급을 전수하고
소주 딱 한 병 마시고 온 아침
신문은 오지 않는 게 좋겠다
빨간 코의 유쾌한 광대가 문 두드리면 좋겠다
당신의 나라가 흑백으로 치직거리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고
*시집, 지상의 하루, 문예중앙
이런 안부를 묻다 - 임곤택
머리가 맑다 작은 소리가 잘 들린다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우스웠는데
매년 봄 가야 하는 병원도 걸렀는데
피 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고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는데
글이 잘 써지고
정신이 너무 맑아서
기관지의 칼칼한 기미 다 삼켜진 줄 알았는데
일어설 때마다 눈앞에 날리던 꽃씨들
다 잦아든 것 같았는데
정오의 태양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두어 권 책을 선 채로 읽고
구호를 외치는 노병들의 일사분란함을
곁눈질로 보고
비가 내릴 거라는 뉴스를 떠올렸는데
귀가 더 필요한데
여벌의 눈과 더 많은 손끝이 필요한데
왜 이렇게 머리가 맑은지
구역질이 나도록 머리가 맑은지
*시인의 말
여기는
처마 밑이거나 객석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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