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물고기 서쪽 하늘로 사라지다 - 부정일
어항 속에서 유영하는 별 같은 것들
그냥 놔두지 못한 것이 죄라면
환란도 모른 채 연못에다 가두었다는 것이네
흩어진 비늘로 유린의 현장을 증언할 뿐
백로가 서쪽으로 날아갔다는 말에 허공에다
방아쇠를 당길 수는 없었네
별들은 사라졌는데 남아있는 별 하나 총총걸음만
지난밤의 기억을 삭이고 있네
생은 미완에서 출발하는 미로 같은 것이어서
작은 소홀함이 불행의 씨가 되기도 하네
삶은 카멜레온처럼 온몸으로 절박해야
굶주림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듯이
철모에 꽂혀 있는 솔가지와 풀잎처럼
물레방앗간 그날 밤처럼 은밀해야
부레옥잠을 풀어놓고 그 아래 있어도 없는 듯
별들의 소곤거림을 들을 수 있다네
별들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배후에서
다른 탄생으로 이 밤도 수없이 윤회하며
영롱하게 빛날지니
외로움은 그대의 허공 한 귀퉁이 머문 듯해도
새벽이 다가오면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새 인연 속으로 사라져 간다네
*시집/ 멍/ 한그루
언제나 재앙은 경고네 - 부정일
수많은 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지구라는 별을
선물 받아 그 안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지구를 무엇보다 정성을 다해
가꾸고 사랑해야 하네
아무렇게나 파괴한다면
태풍과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재앙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네
새들을 철망에 가두어서 키우면
조류독감이란 질병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벌목으로 아마존 밀림에서 거목이 쿵 하고 쓰러지면
남극의 빙벽도 쩍쩍 금이 가 쿵 하고 무너지네
지구가 온난화로 뜨거워지는 건
밀림을 파괴하지 말라는 경고네
지금까지 우리에게 찾아왔던 수많은 재앙은
지구를 가꾸고 사랑하라는 경고네
# 부정일 시인은 1954년 제주 출생으로 201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허공에 투망하다>, <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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