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감정의 평균 - 이정록

마루안 2022. 9. 12. 21:48

 

 

감정의 평균 - 이정록


부푸는 무지개를
슬그머니 끌어 내리고
뚝 떨어지는 마음의 빙점에는
손난로를 선물할 것

감정의 평균에
중심 추를 매달 것

꽃잎처럼 달아오른 가슴 밑바닥에서
그 어떤 소리도 올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숨을 쉴 것

불에 달궈진 쇠가 아니라
햇살에 따스해진 툇마루의 온기로
손끝만 내밀 것

일찍 뜬 별 하나에 눈을 맞추고
은하수가 흘러간 쪽으로
고개 들고 걸어갈 것

먼저 이별을 준비할 것
땡감처럼 바닥을 치지 말고
상처 없이 감꽃처럼 내려앉을 것

감꽃 목걸이처럼
감정의 중심에 실을 꿸 것
시나브로 검게 잊혀질 것 


*시집/ 그럴 때가 있다/ 창비

 

 

 




구멍 - 이정록


이거 말이여. 물려줘. 파스에 구멍이 났더라고. 한장밖에 안 썼어. 얼른 뗐어.

근데, 왜 닷새나 있다가 오셨어요?

구멍 난 파스 때문에 차비 아깝게 시내 나오남? 장 볼 때 와야지. 고추밭 농약도 황 노인한테 시키려고 했더만, 머저리 같은 영감탱이가 이해를 못 해서 말이여. 빨랑 구멍 안 뚫린 거로 바꿔줘.

살갗도 숨 쉬라고 뚫어놓은 거예요. 나이 자실수록 구멍이 중요하잖아요.

남세스러워라. 몰랐네.

그런 뜻이 아니고요.

아무렴, 구멍이 중허지. 아직은 콧구멍으로 숨 쉴 만혀 죽을 때쯤 붙여야겄네. 이건 그냥 놔두고 구멍 없는 걸로 하나 따로 줘.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단 학습법 - 김백형  (0) 2022.09.13
만나러 가는 길 - 김초혜  (0) 2022.09.13
태양은 최악이다 - 류흔  (0) 2022.09.08
이불 - 박상천  (0) 2022.09.07
내가 머문 이 자리에 - 박노식  (0) 202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