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계단 학습법 - 김백형

마루안 2022. 9. 13. 21:47

 

 

계단 학습법 - 김백형

 

 

계단은 계단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자신이 급경사의 다리라는 사실을 모른 채

 

올라가면 숨차게 기도로 쫓아 들어와

무릎 접고 발바닥으로 나가는

 

내려가면 다급히 발바닥으로 들어와

무릎 굽혀 기도로 빠져나가는

 

그것을 그는 단계라고 배우며 살아왔다

 

자신을 세어 보는 사람에게도

몇 계단씩 뛰어넘는 사람에게도

더덜이 없는 공평을 유지하며 남은 길을 가늠케 하는

단호한 얼굴

 

올라가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 들키지 않으려는 듯

눈 하나 깜짝 않는 무표정의 직각

 

무수한 발자국에 멍들고 귀가 멀어도

이 꽉 물고 흘러가지 않으려

지나온 길 접고 풀며 시간을 변주하고 있다

 

 

*시집/ 귤/ 걷는사람

 

 

 

 

 

 

옷핀 - 김백형


국민학교 입학식 날, 가슴팍 손수건을 물고 파닥거리던 물고기가 있었지

깻잎 같은 누나와 아슬아슬 침 발라 달고나 별까지 따다 주던 살점 없는 물고기

고무줄 묶어 허리도 한 바퀴 휘돌아 오고

인력시장 나가시던 허름한 잠바 위에 밥풀 바른 색종이 카네이션을 달아 주던

하얗게 질린 급체를 따 손톱 밑에 까마중도 열리게 했던

은빛 물고기, 먼 길 꿰어 와 내 외투 안주머니에 살고 있지

소스라치는 세상의 정전기들, 순식간 달아나게 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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