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태양은 최악이다 - 류흔

마루안 2022. 9. 8. 21:32

 

 

태양은 최악이다 - 류흔

 

 

태양이

망할 태양이 부욱 내 머리카락에 성냥을 그어댈 때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공중에다 삿대질을 한다

 

나이도 있고 해서

이제는 처녀와 연애를 못 한다

옛날에는 여럿을 전전했었지 그 시절

참 좋았다 전성기였어

처녀들은 반드시 전전긍긍했을 거야

나는 그녀들의 태양

 

처녀의 머리카락에 불이 났겠고

그녀들은 빠짐없이 나에게 삿대질을 했지

망할 놈의 새끼!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면 과거의 나

 

작은 오해가 있었다면 이해 바랄게

용서를 구할게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심지어는

태양에게도 털썩

무릎 꿇을게

 

과감히 무릎 꿇은 내가

자랑스럽다

 

태양이,

누구에게나 비추는 태양이지만

지금 나를 비추고 있는

 

태양이 부욱 찢은 꽃의 배후를

내 머리 위로 던지기 전까지는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고비사막 - 류흔


갈 곳 없이 가야 했다
발이 붓고

벌판이라든가 모종의 자연(自然)이 벌떡 일어나도
나는 놀라지 않고 걸어야 했다
밤의 태양에 젖고
정오의 달빛에 취하며
갈 곳 없이 가야 했다

사막 같았다 군데
군데 선인장이 있었다
예전에 애인과 어쩔 수 없이 들었던
어느 늦은 섬의 선인장(船人裝)과는 종(種)이 다른
선인장 앞에 서자 선인장이 답싹
나를 껴안았다
믿을 수 없는 온도가 피부를 찔렀다

무지하게 걸었다
가까스로 사막을 탈출했으나 도중에 오아시스가 없었고
발바닥이 다 닳았으므로 나는
홀로그램처럼 홀로 가벼워졌다

무거운 자는 남겨질 것인가
오래 고민하다 끝내 찌푸린 날씨들
비는 오고,

여러 고비를 지나 비는 오고
대관식인 양 먼지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며 투둑
투둑 비가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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