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안부 총량의 법칙 - 성은주

마루안 2022. 8. 29. 22:02

 

 

안부 총량의 법칙 - 성은주


인사는 인사를 끌어당기고
입의 나라에서 덜 익은 안부가 오간다

가끔, 입의 나라에 끌려가 맛없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가 있다

안녕은 안녕으로 둥둥 떠다니고 잘 지내는 잘 지내로 싱겁게 간을 맞춘다 괜찮아는 괜찮아로 딱딱하게 뭉친다

안부를 전할 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끌려오거나 끌려가거나
슬픔 없는 애도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하루에 쓸 안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안부가 길어지면 어려운 부탁이 따라온다


입에서 입으로 연주하듯 걸어 다닌다


안부가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그럴 리가 있다로, 잘 돼 간다는 잘 될 리 없다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마음에 드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목소리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이 쉽게 빠지지 않는 것처럼 불편하다

 

다음에 보자는 여운을 만들고 떠난다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

 

 

*시집/ 창/ 시인의일요일

 

 

 

 

 

 

회전목마 - 성은주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말 걸어요

계속 말 거는 걸 보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인가요

 

휘청거리는 얼굴로

아침을 처음 보듯이

오늘은 말이야

오늘은 말이야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끝 문장으로 가는 길을 잘 모르나 봐요

 

신호를 볼 줄 모르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는 습관이 있나요 어제 봤던 아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길게 선을 그어 놓고 돌아가네요

 

주머니에서

젖은 나무를 꺼내 놓고

오늘은 말이야

오늘은 말이야

 

왜 했던 말을 또 하나요

한 방향으로만 돌아 페인트가 벗겨졌어요

속마음 들키기 싫어 커다란 우산을 쓰면

가려질까요 숨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헤어질 때도 항상 비슷한 이유로 헤어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