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늦여름, 와불 - 윤향기

마루안 2022. 8. 29. 22:10

 

 

늦여름, 와불 - 윤향기


이른 아침, 방충망 바깥은
타고 남은 진신사리 화장터

푸드득! 푸드득!
도주할 전도도 탈출구도 없이
죽음을 향해 비행 포스로 돌진한
열혈 사내의 최후는 차갑고 단단하다
무모하게 암술을 탐하느라

짧은 행성의 하루를
눈부신 불꽃에 후회 없이 던졌다

그는 한 생애의 남쪽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일까
북쪽을 향한 아미(蛾眉)의 남쪽은
어디일까

불에 탄 날개로 무릎 꿇은 불나방
말복 지나

추운 몸뚱이 하나가 와불로 누워 있다

 

*시집/ 순록 썰매를 탄 북극 여행자/ 천년의시작

 

 

 

 

 

 

서우(暑雨), 다크 투어 - 윤향기

 

 

후쿠오카 형무소 뒷담에 서시를 널어놓고

흐려지는 새들의 발자국을 널어놓고

자화상의 울음을 말린다

패 경 옥 기별을 개켜 놓은 제단에

긴 다리를 쭉 피며 눕는 백골

 

후두둑 빗방울이 내린다

나가사키 구라바공원에 999년 세 든 집

떠난 이별은 올 생각이 없는데

아침상 차려 놓고 울고 있는 나비 부인

 

비애의 뒤편은 언제나 검은색이다

 

 

 

 

# 윤향기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91년 <문학예술>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움을 끌고 가는 수레>, <내 영혼 속에 네가 지은 집>, <굴참나무와 딱따구리>, <엄나무 명상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