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살다 보면 살아진다 - 박상천

마루안 2022. 8. 17. 22:03

 

 

살다 보면 살아진다 - 박상천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차를 몰고 가다가 길가에 세우고
한참을 울던 시간도 있었지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어
한참을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지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터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시간도 많아졌지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피어나는 꽃들조차 그렇게 싫더니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거지 같다 정말 거지 같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해
속으로 욕을 하며 살았지만
그 시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시집/ 그녀를 그리다/ 나무발전소

 

 

 

 

 

 

전화 - 박상천


아침이면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이름이 몇 번쯤 찍혔는지에 따라
전날 밤 나의 술 취한 정도를 가늠하곤 했다.
술에 취해 어딘가에서 졸고 있을지 모를 나를 위해
응답 없는 전화를 계속 걸어대던 아내.

이젠 전화기에 그의 이름이 뜨지 않은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난 아직 그의 번호를 지우지 못한다.
번호를 지운다고
기억까지 지울 수 없을 바엔
내게 관대했던 미소와
아직 생생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고맙고 미안했던 그녀에게
응답 없는 전화라도 걸고 싶기 때문이다.

그곳,
아내의 전화기엔 나의 이름이 뜨고 있을까?

 

 

 

 

# 박상천 시인은 1955년 전남 여수 출생으로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랑을 찾기까지>,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낮술 한잔을 권하다>, <그녀를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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