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 김백형
반백이라고 하면 머리가 하얗게 센 듯하다
오십이라고 하니 반토막 같다
다시, 반세기! 하고 되뇌어 보니
나도 역사의 한 페이지 같다가
쉰이라고 하니까 쉰내가 난다
지천명은 무슨, 하늘의 뜻을 알 리 있겠는가
나도 모르는데
나는 나를 가두어 온 나이테였다
간신히 뿌리 내렸고
갈 길 몰라 가지에 가지를 쳤고
궤변만 무성한 잎으로 피어내다
낯 붉히며 지고 말았다
몇 번의 대통령을 뽑았고
몇 번의 붕괴에도 용케 살았지만
비명에 먼저 간 형제들 있어
울음은 기억만 남기고 증발해 버렸다
그러나 여직 오십을 돌보는 일흔여섯이
그늘도 없는 텃밭에 쪼그려 앉아
열무 솎아내고 있으니
눈꼬리가 습해 온다
나는 나를 결심하지 않기로 한다
*시집/ 귤/ 걷는사람
똥살개 - 김백형
육성회비도 못 낸 놈이 뒤가 급하다 손 들 수도 없는 노릇
움켜쥔 뱃병이 터져 버린 1교시, 하춘화처럼 눈이 큰 선생님은 코를 틀어쥐며 교무실로 내빼고 민방위훈련인양 우르를 복도로 빠져나간 아이들은 교실 안을 구경하고, 근엄하신 각하 옆 스피커에선 이학년 칠반 김태희 어린이가 바지에 똥 쌌으니 오한년 이반 김진희 어린이는 얼른 오라 연속 두 번이나 전교 방송을 하고
옆 반 아이들까지 똥살개 똥살개, 그 똥살개 목줄 잡고 엄마는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실랑이하고
그 시절 다시 온다면 똥살개는 일부러 뱃병이 도져 교실이고 교무실이고 교탁이건 교문이건 각하 사진 옆 스키커에까지 설사똥을 우레로 싸지르고 말 거다 왈왈왈
# 김백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1991년 오월문학상 수상 후 오랜 시간 침묵하다 2017년 오장환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귤>이 첫 시집이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전 - 김영언 (0) | 2022.08.16 |
---|---|
입추 이후 - 김태완 (0) | 2022.08.12 |
마지막 뒤풀이 - 박동민 (0) | 2022.08.12 |
적정 온도 - 조온윤 (0) | 2022.08.11 |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 - 류시화 (0) | 2022.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