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홍신선 시집에 푹 빠져 지냈다. 워낙 이 시인이 서정성 짙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곧 팔순에 접어들 나이가 되어선지 세상을 달관한 듯한 싯구가 인상적이다.
이 시인은 나이 들수록 나와 궁합이 잘 맞는다. 예전에 읽은 젊을 적 시보다 근래에 발표한 시가 훨씬 공감이 간다. 왜 팔팔할 때 시가 아닌 노년의 싯구에 마음이 가는 것일까.
어쩌면 슬픔을 관조하는 각도가 달라져서일 것이다. 내가 푹 빠진 <가을 근방 가재골> 제목처럼 늦가을 오후의 햇살같이 점점 사그러지는 노년의 일상이 은은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 홍신선
갇힌 방 창턱에 두 손 포개 올린 채 넋 놓고 내다보는
초겨울 빗속
이즘 김장밭 무 밑드는 소리에
귀도 깨진
환히 살 마른 늙정이 초개(草芥) 하나
빗발들 사타구니에 고개 쑤셔 박은 채 서럽도록 춥다.
오 저게 내 본래면목인가
아니면 유한(有限)의 이 뇌옥에 갇힌 채
성운(星雲)의 광막한 골짜기 너머나
떠나온 집처럼 넘겨다보는
이 마음이 제 면목인가.
이처럼 서늘하게 가슴을 적시는 시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늙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시, 늙어 보지 않고는 공감할 수 없는 시다. 마지막에 실린 묘비명이라는 시도 옮겨 본다.
Epitaph - 홍신선
여기 시(詩)의 나그네였던 한 사람 잠들어 있다.
왼 인생 말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던 외길 한 가닥의 긴 행로를 접고
뒷날에 묻는 뭇 시편들 남겨 두고
세상에서 내려와 총총히 더 먼 시간 속으로 돌아간
시의 길손 한 사람 여기 쉬고 있다.
수십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라 해도 별 공감이 안 가는 사람이 있다. 작심하고 읽어도 그냥 눈에서 그치고 가슴까지 들어오지 않는 시라면 그러기 십상이다.
홍신선의 시는 눈에서 가슴까지 온전히 전해 온다. 가슴에 닿을 때 더 깊이 각인이 된다고 할까. 근래 읽은 시집 중에 가장 마음을 안정시켜준 시집이기도 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단물이 쉬이 빠지지 않는다. 단숨에 읽었다가 한 줄씩 음미하며 읽었다가 술기운 퍼지듯 마음을 적신다. 가을에 다시 펼쳐보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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