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보리밥 그릇에 사람이 있네 - 오창근

마루안 2022. 7. 29. 21:22

 

 

 

좋은 산문집 하나를 읽었다. 오창근이 쓴 <보리밥 그릇에 사람이 있네>다. 유명 작가는 아니다. 작가라기보다 교육자라고 해야겠다.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강사를 10년쯤 하다 몇 개의 직업을 거쳤다.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비슷할까 하는 대목이 수두룩해서 놀랐다. 베스트 셀러 같은 유명 책보다 숨어 있는 책을 발굴해 읽는 것이 내 책읽기의 목적이기에 그걸 제대로 달성한 것 같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디 여행 갔더니 풍경이 너무 좋았다. 맛집 가서 맛난 것을 먹고 행복했다는 등 흔히 수필집에 나오는 일상이 이 책에는 없다. 부모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이 겪어온 날의 단상을 담담히 서술한다.

 

그 안에 쌍둥이처럼 내 가족의 삶과 내력이 들어 있다. 작가는 8남매 중 일곱 번째인데 여동생과 자신은 배가 다른 자식이었다. 누가 직접 말해 주지 않았지만 눈치로 알게 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어느 한 꼭지 공감이 안 가는 글이 없을 정도다. 빼어난 문장보다는 이렇게 삶의 경험에서 묻어 나온 진솔한 글이 울림은 더 있는 법이다. 글은 자고로 이렇게 쓸 일이다.

 

책을 비평할 능력도 없지만 독후감 짧게 쓰기로 작정했던 터라 아래 글부터는 책에 나온 구절을 옮긴다. 공감 백배의 글을 옮기면 내 글쓰는 실력도 늘면 좋으련만,, 이렇게 문장을 옮기면서 나는 또 배운다.

 

*언젠가부터 아침잠이 없어져서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걷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붉은 트랙을 말없이 걸으며 어제의 삶과 오늘의 만남을 생각한다.

 

어제 만났던 사람과 나눈 이야기들 속에 행여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을 때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을 가리고 행동을 살펴 타인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가 산에 오르고 걷은 이유이기도 하다. *책머리에

 

*어린 마음에 죽음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시신에 대한 공포로 두 귀를 쫑긋거리며 듣던 생각이 난다. 허리가 굽은 노인은 허리를 꺾어야 관에 들어간다는 말에 구십도 휜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나서던 민 씨네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두둑 소리를 상상하며 몸서리치던 유년의 한낮.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염습하는 과정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염습하는 모습에 놀랄지 몰라 어린 두 아들 녀석의 참관을 허락하지 않았다. 밖에서 울고 불고 떼를 쓰며 한사코 보겠다고 난리를 치던 녀석의 나이가 고작 아홉 살, 여섯 살이었다. 막무가내로 매달리기에 허락을 할까 하는 맘도 있었으나 아내가 한사코 말렸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염습 과정을 아버지는 꼿꼿하게 서서 보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당신 아내의 몸에 수의가 입혀져 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셨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둘이 야무신 솜씨로 어머니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혔다. 어머니 등과 엉덩이에 욕창으로 덧댓던 거즈 자국이 선명했다.

 

부음을 듣고 달려간 병실에는 의사 선생과 어머니만 계셨다. 표정은 온화했고 몸엔 온기가 남아있었다. 기도에 뚫은 구멍은  막혀 있고 몸에 치렁치렁 달렸던 주삿바늘의 줄들이 제거되어 깔끔했다.

 

얼굴을 덮기 전 가족들이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쓰다듬는 손길에 닿는 것은 냉기였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생선의 표면처럼 차가웠다. 마음은 뜨거웠고 울부짖는 목소리는 애달팠다. *염쟁이 유씨, 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