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시집 하나를 발견했다. 서점엘 가도 흔히 메이저라 불리는 시집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 위주로 진열이 된다. 당연 독자들 눈에는 이런 시집이 먼저 보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무명 시인에게 눈길이 간다. 서점에서도 맨 앞자리에 있는 시집보다 모서리 한쪽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명 시집을 들춰보려고 노력한다.
이 시집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구석이 좋을 때>라는 제목 또한 마음에 든다. 나도 50대가 저물어 가면서 슬슬 구석이 좋아진다. 구석에 있어도 이렇게 향기를 품은 시집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시인의 약력을 보고 더욱 시에 몰입하게 되었다. 황현중은 시인은 청년 시절 학업을 중단하고 노가다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우체국에 들어가 30여 년을 근무했다.
2015년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문학소년 때부터 틈틈히 시를 썼다고 한다. 이 시집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을 따온 시를 읽어 보자.
구석이 좋을 때 - 황현중
구석이 좋을 때가 있다
고단한 하루가
모두 물러나고
조용히
구석에 등을 기대며
두 발을 뻗으면
이제 좀 살 것 같은
별을 기다리는 작은
꽃 한 송이 될 것만 같은
밀도 있는 문학적 미사여구와 화려한 치장 없이도 잔잔한 울림을 주는 시로 가득하다. 맑은 심성을 가진 들꽃 같은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온다고 할까.
다 잘되고 있다 - 황현중
나는 아픈데,
햇살 더욱 명랑하고
화분은 드디어 꽃대궁을 열었다
이웃의 웃음소리가
피아노 건반에서 물결친다
나만 빼고
다 잘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 기쁠 때 그들 또한 슬펐으므로
슬픔을 확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음이 시려오는 시다. 이런 시집을 만나 내 마음도 훌쩍 맑아진다. 천성이 맑으면 시도 맑다. 오래 시를 읽은 덕에 이런 느낌은 정확하다.
*황현중의 시들은 내상(內傷)의 기록이면서도 낮고 겸허하다. 엄동의 혹한을 노래하는 때에도 따뜻하기 이를 데 없다. 시가, 시의 몸으로서의 적정체온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의 정답을 섣불리 제시하지 않으며, 생의 오답을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시가 좋은 시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면, 보라! 시집 <구석이 좋을 때>는 풍경의 내부와 시인의 내부가 다 함께 찢긴 상처의 기록이면서 시인의 내면으로부터 약동하는, 슬픔으로 슬픔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개화한 시편들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 *김명리 시인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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