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곁에 내가 왔습니다 - 김재덕
봄날
국수 한 그릇 먹고
굽은 느티 어깨 드리운 평상에 앉습니다.
꽃잎 몇 닢 날립니다.
담배 한 모금
낯선 손님처럼 사라지는데
왼쪽 곁에
누가 앉습니다.
어느 봄날
꽃비 내리던 서소문공원에서
세월 참 더럽게 안 간다
먼지 뽀얀 질경이한테 분풀이하던
젊은이군요.
발밑에는
그날 곁에 있었던 그녀 눈물 한 방울
제비꽃으로 피어 있는데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젊은이
날 두고 포로롱
혼자 날아갑니다.
*시집/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 곰곰나루
개심사(開心寺) - 김재덕
서산 지나 해미 가는 길
늙은 작부 사타구니 같은 민둥산 헤집고 들어가면
가슴 환한 절집 하나, 개심사 있습니다.
키 큰 소나무들 내려다보는
검버섯 돌이끼 계단 오르다 보면
문득 내려다보는 천 년 기억이 있습니다.
시루떡 같은 연못 곁에 쪼그려 앉은 배롱나무와
둥그렇게 허리 접은 기둥들,
넋 나간 노인처럼 웃고 있어 개심사인지,
빈 마당 가운데
늙은 돌탑 하나 덩그러니 파수 세우고
글쎄, 마음은 어디 갔는지.
# 김재덕: 1962년 대구 출생으로 한 사십여 년 시를 끼고 살았지만 2010년 이래 이름 없는 문예지 몇 군데서 신인상을 받은 후 세상에 시와 시조를 몇 편씩 내보내고 있다. <나는 왼쪽에서 비롯되었다>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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