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 - 조숙
그동안 만났던 줄을 넘는다
줄을 보고 따라갔다가
낯선 입구 앞에 덩그러니 남겨지던
경계를 두 손으로 잡고 넘는다
뒤통수를 맞거나 발목이 걸려 넘어져도
무릎 굽히며 줄을 넘는다
굽힐수록 다치지 않는다는 것
날지도 못하는 두 팔 날개인 듯 믿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시간은 가고
그렇게 삶의 근육이 커질 것이라고 믿으며
줄을 돌린다
바닥을 쳐봐야
살길이 보인다는 오래된 전설
줄을 만날 때마다 바닥을 딛고 날아올라야 하는
고단한 연속 줄넘기
어두워진
미끄럼틀 아래에서
줄넘기를 한다
*시집/ 문어의 사생활/ 연두출판사
흘수 - 조숙
내가 타고 가야할 미래는 올라타면 움찔한다
작은 바람에도 좌우로 흔들린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두려움,
가끔씩 튀어 오르는 호기심으로 마음 두근거리고,
멀리 지나가는 물결에도
머리부터 꼬리까지 흔들린다
미래의 밑바닥에 붉은 독소 바르고 간다
머릿속에 담긴 흘수
숨기지도 못하고 난바다로 달린다
달린다고 하늘과 물이 맞닿은 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돌아올 길이 없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순간은
달릴 때뿐,
따뜻하면 깊어지고 차가우면 얕아지는
불안한 미래
잔뜩 치켜들고 수평선을 향해 달린다
# 조숙 시인은 충남 조치원 출생으로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금니>, <유쾌하다>, <문어의 사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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