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옛날 - 정덕재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나이 든 할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매달고
폐지를 쓸어 담는 젊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오일장 좌판에서 다듬은 파 두 바구니 시들까
우산 하나 받쳐 놓은 할머니가
오이 가지 호박 부추 대파
쪽파 감자 양파 브로콜리 양배추
박스 열 개를 펼쳐 놓은 젊은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의사 아들이 건물을 지었다고 자랑하던
나이 든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다음 날
석션은 언제 하냐고 묻자
찡그리며 기저귀를 갈던 나이 든 간병인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고단하게 살다 보니
목숨줄이 더 모질어졌다며
송대관 노래처럼 해 뜰 날이 올 줄 알고
고단해도 견뎠더니
목숨줄만 모질어졌다며
그리운 옛날 숨 넘어갈 듯 긴 시조창을 부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백일홍 - 정덕재
백일홍을 심었다
피는 날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해
구십 일을 넘지 못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백일홍 아래
번식력 좋은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었다
백일홍 구십 일
꽃반지 열흘
둘이서 백 일을 채웠다
지는 꽃 아래
피는 꽃 있어
꽃들은 계절을 이어 가는 계주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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