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좋았던 옛날 - 정덕재

마루안 2022. 7. 19. 21:56

 

 

좋았던 옛날 - 정덕재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나이 든 할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리어카를 매달고

폐지를 쓸어 담는 젊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오일장 좌판에서 다듬은 파 두 바구니 시들까

우산 하나 받쳐 놓은 할머니가

오이 가지 호박 부추 대파

쪽파 감자 양파 브로콜리 양배추

박스 열 개를 펼쳐 놓은 젊은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의사 아들이 건물을 지었다고 자랑하던

나이 든 할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다음 날

석션은 언제 하냐고 묻자

찡그리며 기저귀를 갈던 나이 든 간병인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고단하게 살다 보니

목숨줄이 더 모질어졌다며

송대관 노래처럼 해 뜰 날이 올 줄 알고

고단해도 견뎠더니

목숨줄만 모질어졌다며

그리운 옛날 숨 넘어갈 듯 긴 시조창을 부른다

 

옛날이 좋았지 육십만 넘으면 죽었는데

 

 

*시집/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 걷는사람

 

 

 

 

 

 

백일홍 - 정덕재

 

 

백일홍을 심었다

피는 날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해

구십 일을 넘지 못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백일홍 아래

번식력 좋은 토끼풀로

꽃반지 만들었다

 

백일홍 구십 일

꽃반지 열흘

둘이서 백 일을 채웠다

 

지는 꽃 아래

피는 꽃 있어

꽃들은 계절을 이어 가는 계주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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