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막 - 신동호

마루안 2022. 7. 18. 21:55

 

 

사막 - 신동호


서편으로 가는 동안 이별이 다가온다
사막은 깊고 멀어야 한다
별이 내려 작은 모래와 살을 맞대고
지나온 기억들은 반짝인다
부르카가 흔들리지 않는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느린 걸음

내가 낙타였을 때, 사막의 밤은
우주 저 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라비아의 공주는 앞으로 뒤로
내 걸음의 리듬을 맞춰주었다
초승달 같은 눈을 만나면
지금도 나는 허리가 아프다
저녁을 향해 걷는 동안 나는 늘
모래처럼 작아졌다
모래 언덕이 수세기를 건너왔으나
지금도 모스크로 총총, 멀어져가는 사랑

모든 신들은 사막에 산다
목마른 자들만이 신들을 추억한다
숨을 곳이 없는 자들만이 죽음을 마주한다
심연이 이내 신들이 되곤 했던 그곳
걸음들이 깊은 발자국만큼 겸솜해지곤 했던
사막 끝, 그곳 어디

 

 

*시집/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한다/ 창비

 

 

 

 

 

 

수선(修繕) - 신동호

 

 

청바지 뒷주머니에 단추를 달았다. 몇번 지갑을 잃고 궁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돋보기를 살짝 내린 수선집 아주머니가 왜?란 표정으로, 처음이라 하셨다. 세월이 낳은 숙련에게 솜씨는 찰나다. 단추를, 잠그자, 불쌍한 자본주의자가 되었다.

 

겨울 외투의 단추를 당겨 달고 싶었다. 몇년 사이 살이 내리고, 폼 사이로 찬 바람이 불쑥 손을 넣었다. 종로 르미에르 5층 작은 수선집 앞에 쪼그려 앉아, 아주머니의 굳은살이 누르는 바늘을 보았다. 겨우내 앞섶이 고독을 단단히 감싸주었다.

 

단추를 몇개 마음에 달았는데, 바느질이 엉망이라 잘 열지 못하게 되었다.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삶은 낡아가고 도통 마음은 손보아 고치기가 어렵다. 마음을 끄집어내었다가 도로 보자기에 꼭 쌌다. 장롱 깊숙이 넣어두고 당분간 잊을 생각이다.

 

 

 

 

# 신동호 시인은 1965년 강원도 화천 출생으로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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