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남해 도솔암 - 이우근

마루안 2022. 7. 16. 19:34

 

 

남해 도솔암 - 이우근

 

 

도솔암 가는 길은 굽이마다 형편대로 눕는다

그리고 불시에 일어나 하늘까지 닿는다

바람소리에 해조음(海潮音)이 들린다

산은 조바심 없이 밭은기침으로

자신의 벽을 연다, 아무도 모른다

마음이 바르다면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무슨 상관이랴

높낮이의 위치가 무슨 상관이랴

낙엽과 해초가 이웃이지 말란 법도 없다

잦은 바람이 물결로 이마를 어루만질 때

비로소 미망(迷妄)을 따져본다

사람들의 계산은 이미 부질없지만

더하고 곱해도 빼고 나눔은 없더라만,

그래도 곱씹은 아득한 희망

손톱 깎듯 낮달을 똑, 따서

발바닥 아래 던져 꽃피길 바란다

등산화 신은 나를 제치고

고무신 신은 노보살이 땀조차 흘리지 않고

휑하니 지나간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

쪽박 때리듯 두들겨 패는 목탁 소리

결코 풍경 소리 이기지 못하리

그 소리에 귀가 먹어

나는 더욱 잡놈이 되리라 한다

하여 잠시 비켜서서 오줌을 눈다

어차피 세상은 소금밭이다.

 

 

*시집/ 빛 바른 외곽/ 도서출판 선

 

 

 

 

 

 

배롱나무 - 이우근

 

 

내 천박한 것들을

부처의 모서리에서 털어버리고

절하고 나오는데

배롱나무 활짝 핀 꽃 때문에

더 천박해졌다

저리 만개할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지전(紙錢) 몇 푼으로 땜빵할

내 인생이 아닌 모양이다

햇살이, 맑은 하늘이,

공양주 보살의 까칠한 뒷꿈치가

나를 저격한다

집에 가야지, 해우소(解憂所)에서

물건 바라보며

무얼 해소하는지는 모르지만,

재촉 당하는 식은 욕망,

결국엔,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