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를 가까이 - 김영언
공기 맑고 인적 드문 낯선 시골로
낭만적인 기분에 들떠 이사를 한 휴일 오후
구부정한 허리와 백발과 지팡이들 대여섯이
반가운 불청객으로 몰려왔다
금방 짜내어서 고소함이 들판을 휘감을 듯 끈끈한 들기름 한 병과
농약 안 주고 하우스 안에서 가족용으로 기른 고춧가루 한 봉지와
오래 두어도 단단하고 맛이 순하다는 토종 마늘 한 접과
텃밭에서 가꾼 꾸밈없는 빛깔의 청치마 상추 서너 포기와
속살이 호박처럼 정겹게 노랗다는 고구마 한 상자가
예고도 하지 않은 집들이를 예고도 없이 왔다
그들은 내 주를 가까이하라고 엄숙한 노래를 불러주고 돌아갔는데
나는 송구스럽게도 그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고
다만 내 주위를 가까이하겠노라 기꺼운 다짐을 하였다
첨탑 위 십자가가 아담하게 걸려 있는 문산성결교회 언덕배기
촘촘한 머위 잎사귀 군락처럼 돋아난 야트막한 집들을 향해
아른아른 스며드는 그들의 뒷모습이 꽤나 애틋했다
*시집/ 나이테의 무게/ 도서출판 b
들길에서 - 김영언
때론 외로움을 만나고 싶어
종종 걷곤 하는 들길
지나갈 때마다
외로운 것들이 한 가지씩 손을 내밀어
외로움을 함께 한다
저녁놀 저녁섬 저녁산 저녁새 저녁달
저녁의 모든 것들은 그림자다
나를 닮은 표정들이 기다리는
외로운 것들의 정원
들길에서
# 김영언 시인은 1962년 인천 자월(紫月)에서 출생하여 서강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교사문학> 동인지와 계간 <황해문화> 등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계간문예 <다층>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아무도 주워 가지 않는 세월>, <집 없는 시대의 자화상>이 있다. 강화도 마니산 자락에 기거하며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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