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행복한 이유 하나 - 황현중
오늘 또다시 길을 떠나는 이유는
이유 없이 떠나는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여도
부질없는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헛바퀴 돌리는 헛일이라 하여도
늘 제자리인 줄 알면서도
늘 제자리걸음으로
걸음걸음 신나는
순간순간 빛나는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비틀거려도 주저앉지 말아야 할
비틀거리는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해를 붙들고
빈 가지에 젖은 바람을 흔들며
흔들리는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 흥분보다
무엇이 된 기쁨보다
이유를 유혹하지 않는
이유 없는
행복한 이유 하나 만드는 것이다
*시집/ 너를 흔드는 파문이 좋은 거야/ 그림과책
지천명(知天命)을 위한 기도 - 황현중
수없이 떠나려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떠나지 못했던 이곳,
이곳에서의 삶
삶이란,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것인가?
견뎌야만 한다기에 더 견딜 수 없는 몸부림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완전한 명제
참과 거짓을 가르는 날카로운 경계 위의
내림굿 같은 위태로움
지금까지의 삶은 무의미했고
나머지 삶마저 의문부호를 찍어야 하는 막막함
막막한 바다 위의
외딴섬 같은 이 외로움은 또 무엇인가?
슬픔도 그리움도 아닌 사무치는 이 외로움은
살아남기 위해 사는 것이 삶의 이유라면
삶은 이유 없는 것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를 증명하라시면
신이시여!
(저는 지금 무릎을 꿇었나이다)
희망의 가느다란 속성 한 가닥 길러 내소서
고치의 실을 뽑아내듯
망가진 지천명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물레질하소서
희망에 닿지 못할지라도 후회하지 않고
희망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도록
고래가 고래로 사는 것처럼
새우가 새우로 사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하나로 가득 존재하도록
다만 존재로써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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