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없는 사람 - 박용하

마루안 2022. 6. 19. 21:18

 

 

없는 사람 - 박용하

 

 

그가 침대에 누워 있다는 전화가 여름 빗소리의 밤을 뚫고 쳐들어온다. 죽기 전에 봐야 하지 않겠어요. 형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네 목소리가 거세지는 빗방울과 연합해서 밤의 바닥을 열혈로 두드린다.

 

두 달 전 그를 바닷가 병원에 입원시키고 얼른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연락 없길 바라며 지냈다. 두 번이나 옮겨간 병원에서 본 그는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저럴 바엔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애인의 몸을 원하듯이 간절히 원했다. 거친 숨을 내쉬는 그의 사지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짓도 보태지 않고 서둘러 내 그림자를 데리고 밤을 달렸다.

 

그를 보고 온 다음날 그가 갔다는 기별이 왔다.

 

그는 나하곤 상극이자 한 지붕 밑에서 공기를 마실 수 없는 사이. 그는 내 피의 반대편 반쪽. 그런 그가 가고 나니 한 줌 재. 가고 나니 왜 그랬니, 왜 그렇게 살았니 물어본들 죽은 자는 재 한 줌. 입관할 때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보태지 않았다. 화장장에서 만난 그의 형제들을 보니 눈물이 맺히더군. 몇 눈물 봉오리만 지상으로 떨구고 나머지는 둘둘 말아 심장 속으로 되던져 넣어 버리고 말았지.

 

그런 그가 가고 나자 그가 가끔 일어나 앉는다. 내 어린 날의 어느 날이거나 지금보다 젊은 어느 날의 상처 난 하루는 불굴의 기억으로 되살아나 평생을 따라다닐 것이다. 사십여 년 만에 그가 근무하던 북쪽 항구에 몇 년 전 갔었지. 5월이었지. 바다가 얼마나 고요한지 나비의 날갯짓 한 번으로도 바다가 깨질 것 같았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고요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가 살던 도시에 가서도 연락 없이 지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뜨곤 했다. 그가 있던 그곳은 늘 가고 싶은 곳이지만 늘 서둘러 뜨고 싶었던 곳. 그가 살아 있을 땐 생각나는 것조차 끔찍이 싫어했던 내가 그가 가고 나니 네 생각을 한다. 오랜 여정 끝에 집에 다다른 사람처럼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나타나는 사람은 죽은 사람. 없는 사람이면서 비로소 있게 된 사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당신은 살아 있을 때 잘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시집/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달아실

 

 

 

 

 

 

*시인의 말

 

어떨 땐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인생에 없어 보인다.

 

내가 사는 마을에 실력 있고 과잉 진료 안 하는 치과의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발만큼 가까이 있는 구원.

화장실만큼 가까이 있는 지옥.

 

작은 풀들의 잔잔한 흔들림,

작의 새 몇 마리의 여린 지저귐,

네 다리 쭉 뻗고 낮잠 든 개의 한낮,

시간을 데려오고 데려가는 나뭇잎의 사계가 가져다주는

조용한 평화와 맞바꿀 만한 위력이 삶에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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