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복권 - 박은영
가능성은 긁지 않을 때 일어나는 사건
우리는 서로의 등을 긁어 줬다 꽝인지, 행운인지 손 닿지 않는 곳을 긁어 주는 사이가 되었지만 잔소리를 하며 바가지를 긁을 때가 많았다 긁을수록 앞날은 보이지 않고 마른 등판만 눈에 들어왔다 일확천금의 불가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것이
가장 쉬운 일
긁지 않고 그대로 두는 편이 나을 뻔했다 우리는 꽝이란 것을 안 뒤 즉석요리를 먹듯 뭐든지 쉽게 화를 내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찢어지자며 인성을 높였다 어떤 날은 긁다가 혈흔을 남기기도 했다
손톱은 피를 먹고 자랐다 우리의 관계에서 남은 건 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등골은 물론이고 이마와 미간, 손등,,,,, 온몸은 그야말로 손톱자국으로 이글거렸다
그래도 한 가지
우리가 낳은 자식은 가능성이 많은 아이라고 여겼다
그 희망을 간직하고 살았다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 시인의일요일
쪽방 - 박은영
마늘은 육 쪽,
하룻밤 물에 불린 마늘 껍질처럼 벽지가 들뜬 내 방은 우측 복도 맨 안쪽이다 눈물이 나는 것은 쪽창이 없는 까닭이 아니다 동쪽으로 싹이 난 시절은 가고, 벽을 등진 자리에서 독하고 매운 짐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가장 무거운 짐은 몸뚱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렸다
생마늘을 씹어 먹은 듯 입냄새를 풍기며 지내온 동안 마늘 꽃을 본 적이 있던가 하늘은 멀고 고독은 가까이 있으니 바닥을 보며 살았다
반쪽 없이
우두커니 앉은 외쪽,
내 누더기 같은 껍질은 누가 까 줄까
*시인의 말
연하게 삽니다.
진하게 죽기 위해 연필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무엇을 쓰든 필연이길 바라지만
우연도 사랑합니다.
인연, 심연, 본연,,,,, 세상 모든 연을
연연합니다.
연이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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