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혼자 먹는 밥 - 강시현

마루안 2022. 6. 12. 22:15

 

 

혼자 먹는 밥 - 강시현

 

 

흰 목덜미 같은 사발에 밥 한 주걱 퍼서

식은 시래깃국 부어

불 꺼진 저녁 찬장 마주하고 병자같이 먹는다

 

얻은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불현듯, 내놓아야 할 것이 줄지어 섰다

다가올 것들은 희미하고

떠나갈 것들은 또렷하고 당당하다

 

마당에서 토막 잠을 자던 바람이 어깨를 들썩인다

이제 몸 밖도 몸 안도 조금씩 내놓아야 할 때인가

매달릴수록 떠나는 것들이 구름져 비 되어 내린다

아끼는 것들은 붙잡지 않아도 차가운 온도로 떠난다

 

혼자임을 깨치는 일은 살가운 자기 그림자와 이별하는 아픔이다

 

무거운 나이도 그렇게 먹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든

허기진 것들은 혼자 먹는 밥처럼

절망인 척하는 것이다

애매한 질문은 되돌려 주는 것이다

훌륭한 해답을 알고나 있는 듯이

 

 

*시집/ 대서 즈음/ 천년의시작

 

 

 

 

 

 

슬픔의 오독 - 강시현

 

 

당신 없인 못 산다던

지독한 시절 지나고,

이제,,,,, 당신 때문에 못 살겠다는 당신

 

몇 번이고 빗물 머금던

뜨거운 세월은 지워지고,

 

화사한 그늘을 만들지 못한

커트라인 근처의 건조한 그림자들,

허튼 맹세는

함부로 할 일이 아니었으나

 

누구의 삶도

쓸쓸함의 한 칸 집 짓는 일임을,

아주 먼 길을 가 보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사랑이라 쓰는 복잡한 낱말이 원래부터

슬픔의 오독이었음을

예전에는 알 수가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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