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보다 먼저 오는 새 - 박봉준
뻐꾸기 새끼에게
쉼 없이 먹이를 잡아다 먹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뱁새를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뱁새 새끼를 모두 밀어내 죽이고 염치없이 입을 벌리는 덩치 큰 뻐꾸기 새끼 뱁새는 탄생의 비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모순을 사람들은 섭리라고 하겠지
어쩌다 제 손으로 혈육을 키우지 못하고 심청이 아비 젖동냥하듯이 이곳저곳 탁란하여 눈도 채 뜨지 못한 어린 새끼 손에 악의 피를 묻히는
뻐꾸기의 생도 참 기구하다 싶어 그 소리 다시 들어보니 녹음 짙어가는 들녘이 다 평화로운 것만이 아니다
천치 같은 뱁새도
피를 묻힌 뻐꾸기도 함께 살아야 하는
푸른 오월
*시집/ 단 한 번을 위한 변명/ 상상인
그까짓 거, 참 - 박봉준
한날한시에 죽지 못한다면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남자가 먼저 가야 한다는
아내의 논리가 섭섭하기는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아내가 딸네 집에 가서 며칠째 오지 않고 잘 살고 있느냐고 전화했기에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무심코 대답 했더니 그럼 어디 한번 잘 살아 보라고 한다
그까짓 거 전화 한 통화 때리면 배달의 민족 달려오고 핸드폰만 있으면 온종일 깨가 쏟아지는 세상
그까짓 거 홀아비 친구들도 혼자서 사는데 왜 못 살겠느냐마는 생각해 보니 내가 한 번쯤 그 친구들이 꾹꾹 눈물을 가둬놓은 호수의 바닥들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며칠 딸네 집에 간 아내를 기다리는
아지랑이 같은 봄날 허허
# 박봉준 시인은 강원도 고성 출생으로 강원대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2004 <시와비평>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입술에 먼저 붙는 말>, <단 한 번을 위한 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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