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서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는 - 김륭
찰칵, 한순간이다, 한 번 갇히면
도망갈 수 없다. 백 년이 가고 천 년이 가도
아이처럼 해맑아서 무덤 속으로도
발을 내릴 수 없다
도라지꽃밭 같았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밤을 당신의 발처럼 만질 수 있는 곳. 모든 세상이
거짓말 같아서, 도라지꽃이 필 때도 도라지꽃이 질 때도
사람은 사람을 끝내 고쳐 쓸 수 없어서
사진 속에서 희멀겋게 웃고 있는 당신을 꺼내
발톱을 깎아 준다. 오늘은 내가
좀 착해진 것 같다.
느닷없이
이 형용사는 살 같다. 그래서 당신은 웃고 나는 울고
기억이란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의 뼈, 그러니까 촉망받는
주검들의 이야기.
당신 덕분이라고 쓸 수 있다. 언제부터 내 사랑은
골동품 상점의 고문서가 되어 버렸을까.
아버지, 떠난 적도 없고 떠나보낸 적도 없는 없는 당신으로부터
바람이 오고 또 밤입니다. 그래 그 여름을 끓이던
밤의 비알.
죽음으로 끓이던 생의 한순간을
고백하기 위해 당신은 사진 속에 문을 닫고
앉아 부풀어 오른다.
죽음마저 곁에 둘 수 없는
사람의 두 눈은 신(神)을 아기처럼 업은
밤의 독서로도 끝내
감길 수 없다.
*시집/ 나의 머랭 선생님/ 시인의 일요일
잠적 - 김륭
기분 좋게 출발하는 중이야
안녕, 이란 말 대신 휘파람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 없는 바람 불어오고
그 바람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보여 주는
모란앵무 데리고
못다 부른 노래마저 들킬까 봐 숨어서
다시 공부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도 하고
딸 하나쯤 낳고 살다가, 깜빡
죽는 것도 잊어버릴
곳
미안해, 더 이상 찾지 마
나, 지금 당신 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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