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검은 악보 - 신철규

마루안 2022. 5. 27. 21:30

 

 

검은 악보 - 신철규


중부고속도로에서 형체가 너무 뚜렷한 사체를 보았다
고양이인지 개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지나쳤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도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지른다
아무리 낭만적이거나 과격한 노래를 틀어놓아도
사라지지 않는 경악

가두지 못한 눈물이 쏟아지고
거두지 못한 부은 발은 내 뒤에 남아 있다
구겨진 심장이 펴지지 않는다

상하행선을 가르는 시멘트 분리대 근처에서
넘어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던 그것은
한참을 망설이다 머리를 들이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번개처럼 지나간 둔기에 튕겨져 분리대에 다시 몸을 부딪치고 쓰러졌을 것이다

생생한 죽음은 싱싱한 주검이 되어갈 것이다
핏물이 번지고 흐르다가 말라붙을 것이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분리대에 막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햇살이 고운 가루가 되어 낙진처럼 가라앉는다
빛에도 무게가 있을까
눈을 감고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면
얇은 천이 한 장씩 덮여오는 느낌

고속도로는 수많은 죽음을 빨아들인 채 곧게 뻗어 있다
불안은 바퀴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고속으로 지워지는 것이 있다

 

 

*시집/ 심장보다 높이/ 창비

 

 

 

 

 

 

적막 - 신철규

 

 

모내기가 끝난 논

 

이앙기 지나간 자리에 남은

앙다문 이빨 자국

 

두 다리가 삐죽 나온 올챙이

창자를 달고 우주인처럼

둥둥 떠 있다

 

일찍 태어난 게 죄다

 

바람이 건듯 불자

최르르 밀려 논두렁에 부딪치는 물낯

넘칠 듯 말 듯 그렁그렁

 

하늘 속을 유영(游泳)하는 구름 위에

거꾸로 매달린 소금쟁이

어지러운 듯

 

손톱으로 꽉, 부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