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봄이 잖아, 고개 들어 - 황현중

마루안 2022. 5. 26. 21:23

 

 

봄이 잖아, 고개 들어 - 황현중

 

 

괜히 부끄럽고 덜컥 겁이 나고 그렇다

담장 밑 초록을 보면

새로 시작하는 싱싱한 것들을 보면

시들어 가는 내 얼굴을 보면

한숨처럼 꺼져 가는 감탄사 몇 개로

봄이 오는 골목 닦아 보지만

되돌아보니 회색빛, 하늘 온통 누렇다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황사가 주범이라고 말들 하지만

이제 맑은 날 돌아오지 않는단다

여기저기 뒤적거려 봄소식 수소문해도

친구 장례식 때 입었던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가 목을 매고 있을 뿐

목이 메일 뿐

몇 달째 삭은 이빨 빼내고 새 뿌리 박고 있다

서른두 개 이빨 중 내 것은 거의 없다

죽은 뿌리에서 꽃대 올라 올 리 없는데

이게 웬일인가

입안의 통증이 자꾸 붉은 꽃 토해낸다

꽃가루가 온몸 간지럽힌다

부끄럽다

고목나무 발치에서 웅성웅성 키 세우며

기어오르는 저 싱싱한 것들을 보면

그래도 봄은 온다고 옹이 가슴에 슬쩍,

꽃눈 껴안은 저 고목나무를 보면.....

 

봄이잖아, 고개 들어!

지나가는 누군가 나의 봄을 찰칵, 저장한다

 

 

*시집/ 구석이 좋을 때/ 한국문연

 

 

 

 

 

 

갑상샘 항진증 - 황현중

 

 

몸 안에 단물 많아 위험하다더니

오늘은 호르몬이 위험수위란다

죽음마저도 위험할 나이 아닌데

왜, 나는 아직도 위험한 것일까

젊은 날에 바닥낸 쇠잔한 열망이

부정맥을 유발했을까

소화되지 않은 욕망의 찌거기들

세상을 향해 내지른 소리와 소란이

선무당의 한바탕 푸닥거리로

고열증을 부채질하는 것일까

이 병 고치려면

칼을 들어야 할지

방패를 들어야 할지

먹고 또 먹어도 살이 빠지는

생의 모순 앞에서 떨리는 수전증

하지만 위험한 것이 이것뿐이라면

나는 또 얼마나 안전한가

축난 몸무게 속에 웅크린

저 헛것들의 위태로운 항진이

위험 속에서 위험한 나를 길들인다

 

 

 

 

# 황현중 시인은 1963년 전북 부안 출생으로 2015년 늦깎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조용히 웃는다>, <너를 흔드는 파문이 좋은 거야>, <구석이 좋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