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내가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는지 - 장시우

마루안 2022. 5. 23. 22:20

 

 

내가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는지 - 장시우

 

 

오늘은 비가 내리고

음악은 내 머리 위에 앉아 낯빛을 살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 둥실 떠오른다

내가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는지

끼어들 수 없는 이야기에 끼어든 낯선 얼굴이 있다

 

멋진 밤이니 촛불을 켜고

인터뷰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당신은 어쩌자고 비 오는 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거울에 떠올랐습니까

 

당신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떻게 당신과 당신 주위의 것들을 데려왔을까

빗소리가 부풀어 오르자

당신은 지워지고

플루트에 숨 불어 넣는 소리가 들린다

악보 어디쯤 쉼표로 있는 걸까

그런데 이 곡의 제목은 뭐라구요

덜컹대는 음표 사이 큰 숨을 불어 넣는

저 쉼표는 어떻게 그려 넣어야 할까

 

어쩌다 보니 낯선 일투성이다

내 고양이가 밥 달라고 깨우지 않은 일도

수탉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깨는 일도

잠결에도 더듬어 보는

내 고양이는 어디 갔을까

 

 

*시집/ 이제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아/ 걷는사람

 

 

 

 

 

 

유월 - 장시우

-노무현 12주기에

 

 

내가 좋아하던 그 애와

나를 좋아했던 그 애가 있었던 그 성당에서

언젠가 스쳐 지나간 당신을 나는 몰라요

아니 스쳐 지나간 거라 착각한 것인지 몰라요

나도 모르게 여러 번 스쳐 지나쳤을 당신,

나는 어렸고 당신은 어른이었으니까

어린 우리는 그저 당신을 빼앗아 간 그 시절을 미워했어요

언젠가 스쳐 지났을지도 모를 당신

혹은 내가 알지도 모를 당신을

무성한 뒷말들, 후일담들이 돌림노래처럼 이어지고

죽은 자가 산 자를 불러냈던

들끓던 유월의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으나

파편으로 흩어졌죠

아득히 높았던 당신

조롱받고 비웃음을 사던 당신

이해받지 못하던 잘 알거나 잘 모르던 당신은

당신이 너무 일찍 왔거나

우리가 뭘 몰랐거나

조롱과 비웃음을 가면을 쓰고 버틴

나는 있고 당신은 없어요

파지로 남은 비망록은 뒤늦은 깨달음이고

깨달음은 늘 뒤늦은 조문이고

때늦은 그리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