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애인아 - 나호열
세월은 거짓말도 용서한다
모질게 도망치듯 너를 보냈는데
때는 눈보라 치는 겨울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에서
내게 결별의 찬 손을 내민 것은
너였다고 말한다
다시 어디서든 너를 만날까 두려웠는데
내 눈 안에 너의 얼굴이 담겨 있어
눈물로 씻어내려 했다고 말한다
세월은 자꾸 흘러
거짓말은 거짓말의 진실이 되고
나는 견우 너는 직녀라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온몸을 웅크린 채 땅바닥에 내쳐진
돌멩이는 딱딱한 눈물이었다
세월은 주어를 이렇게 바꿔주는 것이다
*시집/ 안부/ 밥북
이름을 부르다 - 나호열
떠나간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어도
마음 밖으로 어찌 보낼 수 있으랴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을 때
나를 호명하면
장항선이 달려오고
바다에 가닿는 언덕 등 뒤로
엄동의 동백 몇 잎
붉게 피어난다
이제는 옛집으로 남은 사람아
끝내 종착역은 더 멀리 떠나
내 몸을 내리지 못할지라도
나는 어둠을 걸어 닿으리라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끝끝내 피어있는 동백아
가여운 내 몸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내 몸에 깃든 장항선 철길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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