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성으로 가는 서사 - 이영춘
저 푸른 가지 끝에 등불 하나 달려 있다
그 불빛 아래 서성이는 거인의 목같이
긴 기다림의 목덜미가 욕망이란 이름으로 매달려 있다
운명은,
어느 날은 서쪽으로 목이 기울고
어느 날은 동쪽 가지 끝에 매달려
그 성문 앞에서 일렁이는 그림자 하나
나를 판화 한다
오늘 이 순간, 동쪽으로 가는 문 활짝 열어 줄 거인은 누구인가
수성 성씨를 가진 물줄기의 기운으로
둥근 해를 건져 올릴 귀인은 누구인가
동쪽에서 온다는 나의 운수는
어느 하늘 아래서 나침판을 돌리고 있는가
갈 길을 잃고, 방향을 잃고
아득한 저 방파제 너머 그린 듯 앉아 있는 어부의 칼끝에서
가쁜 숨 몰아쉬고 있는 흰 고래 한 마리,
울컥울컥 비린 부유물 쏟아내며
붉은 햇덩이 안고 돌아올 거인을 기다리고 있다
내 안에서 죽은 햇덩이 안고 돌아갈 저 아득한 천공,
그 빙하의 한 세기 앞에서
*시집/ 그 뼈가 아파서 울었다/ 실천문학사
바람의 길 - 이영춘
그는 왜 떠났을까? 바람으로 돌아갔을까?
세상은 모래 바람, 사막 같은 길,
두 사람이 가던 길, 한 사람은 서쪽으로
또 한 사람은 동쪽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져 바람이 된 길,
바람의 심장은 어느 계곡에 머무는가
지구의 반대편 사막에 들었는가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한 사람이 떠나갔다
한 줄기 강물에서 두 갈래의 강물로
어둠을 안고 도는 혹성의 발자국, 발자국들의 수레바퀴
바퀴 빠진 한 채의 우주 공간이
허공에서 사막에서 바람으로 흩어진다
소식 아득한 바람의 길
가방을 등에 멘 두 개의 별
한 사람은 동쪽 혹성으로
또 한 사람은 서쪽 유성으로
어둠을 지고 어둠 속으로 간다
점점이 흩어지는 사막 길을 간다
잠들 수 없는 두 개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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